작년에 화장품 브랜드 8,831개가 사라졌습니다
발행일: 2026년 6월 8일 · CNEC 뉴스레터
수출은 사상 최대, 그런데 브랜드 수는 처음으로 줄었다
2024년 화장품 책임판매업체 8,831개가 문을 닫는 동안, K-뷰티 수출은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 모순처럼 보이는 두 숫자는 사실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쉬운 창업·광고로 버티기'라는 방식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신호다.
2026년 1분기 화장품 수출액은 31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9% 증가하며 역대 모든 분기를 통틀어 최대치를 기록했다(식약처). 수출 1위 국가는 미국이다. 산업 전체의 외형은 커지고 있다.
반면 책임판매업체 수는 2015년 통계 집계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다. 2024년 한 해 동안 8,831개가 폐업하고 5,169개가 신규 등록됐다. 단, 이 폐업 수치를 그대로 읽으면 오해가 생긴다. 2024년 7월 시행규칙 개정으로 세무서에 이미 폐업 신고된 업체를 식약처가 직권 취소할 수 있게 됐고, 이 방식으로 한 번에 정리된 곳이 6,292개다. '대규모 줄폐업'이라기보다 '이미 사라진 회사들의 장부 정리'에 가깝다. 그럼에도 방향은 분명하다. 우후죽순 늘어나던 브랜드 수가 이제 정리 국면에 접어들었다.
과잉 경쟁과 광고비 상승이 만든 구조적 함정
ODM 위탁생산과 SNS 유통 덕분에 화장품 브랜드 창업 문턱은 낮아졌다. 대규모 자본이나 R&D 없이도 아이디어만으로 브랜드를 출시할 수 있게 되면서 인플루언서, 주부, 이종 업종까지 뛰어들었다. 그 결과 10억 원 미만 영세 업체 비중이 2014년 90%에서 2023년 93.5%까지 올라갔다. 책임판매업체 수는 두 배로 늘었지만 총생산금액은 오히려 10.8% 감소했다. 머릿수만 늘고 파이는 커지지 않은 구조다.
시장 내부 경쟁이 심화되는 동안 마케팅 비용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2024년 국내 화장품 소매판매액은 전년 대비 2% 감소했지만, 화장품 업종 디지털 광고비는 같은 해 22% 증가했다. 2021년 2,917억 원에서 2024년 3,893억 원으로 뛰었다(메조미디어·리서치애드, 2025). 같은 소비자를 두고 더 많은 브랜드가 더 많은 돈을 쓰며 경쟁하는 구조가 고착됐다.
플랫폼 단가도 오르고 있다. 메타는 2025년 연간 실적 발표에서 평균 광고 단가가 2024년 10%, 2025년 9% 상승했다고 직접 밝혔다. 광고를 끄면 매출이 멈추고, 켜면 적자가 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돈이 있는 곳도 예외가 아니었다. 셀트리온(한스킨), 모나미, 이마트(센텐스·스톤브릭), 롯데(엘앤코스), 코오롱(라이크와이즈·마뗑킴) 등 유통망과 자본을 갖춘 대기업들도 잇따라 화장품 사업에서 철수했다. 광고비를 더 투입하는 방식으로는 이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대기업이 먼저 증명한 셈이다.
콘텐츠 자산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하는 이유
퍼포먼스 마케팅 효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실제 전환점을 만든 사례가 있다. 한 건기식 브랜드는 런칭 초기 메타 광고 ROAS가 300%까지 나왔지만 현재 120%도 간당간당한 상황이 됐다. 반면 시딩으로 제품만 협찬했던 마이크로 유튜버 후기 영상이 30만 조회를 넘기며 퍼포먼스 광고 1,000만 원 집행 대비 더 높은 매출을 기록했다.
이 사례가 주는 시사점은 '광고를 끊어라'가 아니다. 자사몰이든 쿠팡이든 올리브영이든 노출의 시작점은 여전히 인스타그램이다. 핵심은 광고에만 매출을 매달지 않는 것이다. 광고는 유입의 입구로 활용하되, 그 입구로 들어온 소비자를 붙잡는 것은 콘텐츠다. 광고는 중단하는 순간 사라지지만, 크리에이터가 만든 콘텐츠는 쌓이며 신뢰를 타고 계속 도달한다.
단, 크리에이터 협업에도 함정이 있다. 팔로워 수만 보고 진행하면 실패 확률이 높다. 팔로워 수십만 명임에도 실제 판매가 100~200만 원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요한 것은 팔로워 규모가 아니라 실제 구매로 연결하는 크리에이터를 식별하는 안목이다.
광고 의존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한 체크리스트
- 현재 매출에서 퍼포먼스 광고 의존 비중을 파악한다
- 광고를 껐을 때 자연 유입(SEO, 콘텐츠, 구전)이 얼마나 남는지 측정한다
- 팔로워 수가 아닌 실제 전환 이력이 있는 크리에이터를 선별한다
- 크리에이터 콘텐츠를 일회성 캠페인이 아닌 장기 자산으로 축적하는 구조를 만든다
- 광고는 유입 채널로 유지하되, 재구매와 충성 고객 확보는 콘텐츠와 커뮤니티로 분리한다
지금 이 국면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2024년의 숫자는 시장이 나빠졌다는 신호가 아니다. 수출은 여전히 사상 최대이고, K-뷰티에 대한 글로벌 수요는 실재한다. 다만 '저비용 창업 후 광고비로 버티는' 방식이 유효했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신호다. 들어오는 문은 여전히 넓다. 달라진 것은 버티는 방식이다. 살아남는 브랜드는 광고비를 더 쓰는 곳이 아니라, 광고 바깥에 자기 채널과 콘텐츠 자산을 쌓은 곳일 가능성이 높다.